Re-everythinged, by Levine

가만히,

자신을 본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고 고된 일.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려 해도 사실 그것은 불가능한 일.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들여다 본다.

하나씩 자신이 입고 있는, 혹은 가리고 있거나 더 잘보이도록 꾸민 모습을 벗겨낼수록 나 자신은 그리 대단하지도, 그렇다고 막 못나보이지도 않는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세계 최고의 육상선수의 다리를 가진다 해도 다른 동물들보다 빠르게 달릴 수 없고, 세계 최고의 수영선수의 몸을 얻고 기술을 익히더라도 물고기들보다 빠르고 오래 헤엄칠 수 없으며, 맨 몸으로는 날 수도 없고 아무리 무거운 것을 들 수 있더라도 개미처럼 자신의 무게 몇 배 이상을 들 수도 없더라.

그나마 다른 존재들보다 똑똑한 게 인간인지라 이만큼 살아왔지만 똑똑해봤자 인간일 뿐이고 많이 아는 만큼의 지혜가 있는지도 알 수 없더라. 또한 아무리 혼자 똑똑해봐야 혼자로써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지식에 불과하더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위협이나 해로움이 되기도 하고, 잘하고자 한 일이 오히려 민폐 혹은 엉망으로 만들기도 하더라. 못된 짓을 했는데도 나 자신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이익을 주는 경우도 있더라. 가끔은 인간의 존재가 지구에 있어 바이러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까지 미치다보면 이 우주 속에서 먼지보다 가볍고 하찮아 보이기도 하더라.

그 어떤 대단함이나 끔찍함도 결국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더라. 그냥 있는대로, 맨몸이어도 상관없더라. 잘했건 못했건 아무 상관없더라.

그게 지금까지 나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본 결과이지만 앞으로는 또 어떤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 끝까지 관찰하는 것이 또 나의 일이 아닐까 싶다.